2011년 북한 원정의 마지막 산 문필봉

로저 셰퍼드 번역 한영환
평안남도, 맹산군
 

2011년 10월 29일은 북한에서의 13일간 산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북한에 오기 전 서울에서 나의 이번 원정에 대해서 가졌던 우려가 이제 말끔히 사라졌다. 그런 걱정은 산 바람에 날려 멀리 가버렸다.

우리는 여전히 평안남도 맹산 지역을 여행하고 있었다. 바로 전날 우리가 백두대간의 건너편인 함경남도 요덕군 중흥리에 있는 철옹산(1,093m)의 고원 지역에 가보았다. 그 고원은 작지만 인상적이었다. 그곳은 이번 나의 북한 산행에서의 두 번째 고원이다. 첫 번째는 강원도의 새포에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려는 문필봉은 표고 672m로 비교적 낮은 산이었다. 그것이 정확히 백두대간에 위치하지 않고 약간 북쪽으로 떨어져있다. 이 산은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붓처럼 뾰죽한 봉인데, 그곳에서 마탄강이 내려다보인다. 이 강은 문필봉에서 단지 20km 서쪽에서 대동강에 합류하고 있다. 그리고 이 봉은 철옹산에서 불과 10km 떨어져있다. 내가 북한에 가기 전 서울에서 신산경표를 보고 문필봉을 선택했었는데, 이유는 독특한 전망을 제공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이름이 글을 쓰는 붓이라는 뜻이여서 흥미를 끌었다(역주-문필봉이라는 이름은 계룡산 등 남한의 여러 산에도 있다).

철옹산에 갔던 팀이 모두 문필봉에 갔다. 맹산에서 온 이형선 씨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었지만, 새로운 현지 안내자 임희철 씨가 추가로 가담했다. 임 씨는 근처 마을에서 임업에 종사하는 분이다. 황성철과 황철영을 합쳐 모두 5명이었다. 우리는 문필봉을 북쪽에서 접근했다. 우리 뒤편에서 마탄강이 대동강 쪽으로 흐르고 있었는데, 물이 아주 맑아 보였다. 늦은 가을에 머리 위로는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쳤고 산들 바람이 불면서 비를 뿌릴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주었다. 논밭은 수확을 한 뒤고 산기슭도 벌거벗어 주위가 메마른 누런색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우리가 흙길에 자동차를 세웠다. 그 길은 황량한 산 속으로 꼬불꼬불 들어가고 있었다. 나름대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우리의 문필봉 등산은 이전의 등산 때와 달리 산길에서 시작되었다. 이 길은 주민들이 산기슭의 옥수수 밭에 갈 때 사용하는 것이다. 이 산길은 잘 사용되었으며 달구지 자국도 있었다. 우리가 벽지의 이 산에 오기 위해 드린 노력에 비해 이제 우리가 쉬운 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니까 우습게 여겨졌다. 그러나 북한의 산에서의 문제는 정상으로 가는 길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주민들이 정상에 올라갈 재미나 실용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산길은 경작지가 없는 곳에서 끝이거나 옆으로 돌아서 다른 편의 마을로 내려간다. 그래서 우리의 편안한 걷기가 갑자기 끝나고 가파른 사면을 힘들게 올라가야 했다. 이곳에는 덤불과 낮은 관목들이 있어 그것들을 뚫고 올라가야 했다. 나, 이 씨, 임 씨 셋이서 앞서 올라갔고 다시 두 황 씨는 뒤에 쳐져서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얼마 뒤 우리는 등반을 막는 위협적인 벼랑을 피해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여겨서 돌아가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의심했다. 돌아갔더니 또다른 벼랑이 나타났다. 갑자기 우리는 전날 철옹산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딜레마에 직면한 듯했다.

전날 우리는 단단하지 않은 수직 암벽 두 피치를 로프 없이 올라가야했었다. 내가 여행 보험도 들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날 전날처럼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조금 자신을 가지고 벼랑에 다가갔다. 좁은 침니가 있었는데, 올라갈 수 있어 보였다. 그러나 얼마 올라가 보니 점점 더 안전하지 않았다. 내가 카메라 배낭을 등에 지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을 느꼈다. 겁이 나자 내가 자신을 잃기 시작했다. 이 침니로 올라갈 수 없어 보이자, 이 씨와 임 씨는 다른 길을 찾으러 갔다. 다른 곳에 가서 여러 번 시도했는데, 아주 높은 암벽은 아니지만 내가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있었다. 철옹산에서 그랬듯이 혹시나 재수 없이 내가 이 산에서 추락하여 바보스럽게 죽거나 적어도 중상을 입지 않을가 하고 나는 몇 번 걱정했다. 만약 중상을 당한다면 현지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그리고 치료비를 내가 감당할 수 없을테데 하는 생각도 했다. 난처하지만 우스운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철옹산에서 그랬듯이 미끄러운 벽면을 오르면서 내 카메라 배낭을 팔을 뻗어 전달했다. 우리는 몸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약간 두꺼운 마른 풀 단과 손가락 굵기의 단단한 관목 줄기를 움켜잡았다. 꼭대기가 가까워지자 올라가기가 쉬워졌으며 튼튼한 나무들이 나타나 잘 잡을 수 있었다. 이 씨와 임 씨가 먼저 위로 올라갔는데, 내가 그들을 보기 전에 즐거운 농담 소리가 들여왔다. 목소리들이 귀에 익은 것이었다. 팔뚝 굵기의 나무줄기를 붙잡고 끌어당겨 내가 돌출부 꼭대기에 올라섰다. 그 돌출부는 조금 전에 지났던 것과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고 기쁘게도 내 앞에 황성철과 황철영이 서있었다. 그들은 환히 미소를 띈 표정을 짓다가 마구 웃어댔다. 나를 비웃는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들 올라온거요?” 하고 내가 물었다. 대답 대신 그들은 계속 크게 웃어댔다. 이 씨와 임 씨는 두 황 씨가 용케 산으로 올라오는 길을 발견한 것을 알아차리고 약간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나도 이 상황을 재미있게 여기자 그들도 기분을 풀고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순간은 우리의 유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Alongside Matan-riverTeam Munpil-bongViews from Munpil-bongViews from Munpil-bong.

두 황 씨가 여전히 자신들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정상 쪽으로 걸어갔는데, 주변은 누런 가을 숲이었지만 꼭대기에 작은 화강암 덩어리가 있었다. 우리가 빨리 문필봉의 정상에 올라섰다. 바위 위에는 여러 사람이 편안히 앉을 자리가 없었다. 북한인들은 바람을 막아주는 바위 짬에 가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편 나는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바위 위에서 자리를 잡고 사진 촬영을 했다. 남쪽 가까이에 백두대간과 철옹산이 보였다. 백두대간 동쪽에는 해발 600m의 고원이 있고 그곳에 중흥리라는 작은 농촌이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중흥리와 같은 표고의 문필봉에 서서 아주 낮은 마탄강을 내려다보면서 이런 지형을 음미하고 있었다.

우리는 문필봉 정상에서 약 30분 지낸 뒤 하산했다. 대략 같은 길로 내려갔지만, 이번에는 가파른 절벽을 피했다. 덤불에서 벗어나자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산길이 나타났다. 북한인 팀원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나는 이번 북한 산행 전반에 관해 이것저것 생각했다. 북한에 오기 전에 다소의 불안감도 느꼈었는데, 이제 그런 것은 사라졌다. 이번에 가본 북한의 산들은 서울에서 지도를 보고 선정한 것이여서 그것에 관한 시각적 지식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산행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금강산을 제외하고는 모든 산이 아주 먼 곳에 위치하여 자동차로 여러 시간 가야했다. 북한 동료들이 열심히 해준데 대해 나는 속으로 감사했다.

자동차에 돌아와서 운전기사 한명수 씨와 만났다. 그는 그 동안 차를 정비하고 세차를 했다. 그는 늘 그렇듯이 우리가 산에서 겪은 바보짓과 모험을 듣고 즐거워했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다가 회전하여 수확을 끝낸 옥수수 밭 사이를 지나 마탄강 강뚝에 내려갔다. 거기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내용은 늘 그렇듯이 밥, 김치, 불고기로 되었는데, 평양 소주와 맛좋은 대동강 맥주로 목을 추겼다. 이것은 우리가 평양으로 돌아가기 전의 마지막 피크닉이었다.

나는 주위 경관을 살펴보았다. 북쪽으로 마탄강 건너 편에 암벽이 있었는데, 그것이 소기래봉(961m)의 산자락에 해당되었다. 이 산은 더운지맥에서 남쪽으로 뻗은 곳에 있는데, 이 지맥은 우리가 있는 곳과 대동강 사이를 지나는 주능선이다. 나의 동남 쪽에 문필봉이 있고 그 너머로 높은 백두대간이 뻗어있었다. 마탄강은 나의 왼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까지 모두 5명이었는데, 그 중 세 명은 16일 동안 나의 모든 여행에 동행했다. 그 중 13일 동안은 3개 도에 있는 백두대간의 10개 산에 갔다. 우리는 피로했지만 즐거웠다. 우리의 우정이 깊어진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인적 사항이 아니라 모험과 산행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들 산은 한국인에게 보통 산이 아니라, 백두대간의 산들이었다. 이들 산의 지형에는 정치적 차이가 없고, 동질성이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볼 때 백두대간은 분단되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

주: 로저 셰퍼드는 6주일간에 걸쳐 북한의 북쪽 지역에 있는 백두대간의 15개의 다른 산들을 탐방하기 위해 6월 14일 다시 북한에 간다. 이번의 그의 산행에는 백두산과 유명한 개마고원 지역이 포함된다.

Post a Comment

Your email is never published nor shar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