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산의 고원(高原)

로저 셰퍼드 번역 한영환
평안남도 맹산군 10월에 2011
 

철옹산(1093m)으로의 산행은 평안남도 북창읍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은 근처의 대동강 물로 냉각하는 큰 화력발전소가 있어 석탄재로 덮여있었다. 우리가 새벽 전에 그곳을 지나갔는데, 발전소는 희미한 빛 속에서 강기슭을 걸어가는 회색의 등을 웅크린 괴물처럼 보였다. 이 거대한 짐승이 석탄을 소비하기 때문에 읍 전체가 검댕으로 덮여있었다. 모든 거리, 골목, 도랑 등에 검은 검댕이 투성이었다. 일꾼들이 석탄재를 삽으로 퍼서 길가 등 모든 곳을 덮었는데, 숯 검댕 색의 그들은 마치 옛 영화에 나오는 색이 바랜 모습들처럼 보였다.

몇 시간 지난 뒤 우리가 탄 자동차는 백두대간의 폼 속에 안겨있는 철옹산으로 가기 위해 탁 트인 시골 길을 한참 달렸다. 그 뒤 맹산이라는 작은 읍에 들러, 두 현지인 리형선과 석인송 씨를 태웠다. 그 다음 자동차는 백두대간의 서면을 올라가서 중흥리 마을에 도착했다. 거기서 우리는 세 번째로 그 지역이 산 위의 평평한 대지(臺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팀의 누구도 이런 고원을 예상하지 못했다. 새로운 고원을 발견한 나는 매우 흥미를 느꼈다. 높은 산들이 있는 북쪽의 량강도에서의 백두대간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나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훨씬 더 먼 그곳에 유명한 개마고원이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남한에서 처음 이 지역에 대해서 들었는데, 남한에서는 이곳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등산가들은 그저 북쪽의 먼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도 그곳의 모습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곳이 아주 멋진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개마고원에 관해서 좀 더 알게 된 것은, 술을 잘 마시며 농담도 잘하는 운전기사 한명수가 개마고원은 그저 끝없다고 말해준 것뿐이었다.

높은 고원에 자리 잡은 중흥리 마을은 함경남도 요덕군에 속하는데, 백두대간이 동서로 굴곡을 이룬 곳이다. 이곳 지형은 진기하다. 왜냐하면 보통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오던 백두대간이 이곳에서 갑자기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약 10km 가다가 다시 동쪽으로 급회전하면서 약 5km 간격의 땅을 가두었는데, 그것이 고원이 되었다. 이 희한한 지형으로 인해 백두대간의 서면에서 입석천과 금야강이 발원하게 되었다. 신산경표에 표시된 산 높이에 따르면, 이 고원 지대는 대략 해발 600m가 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우리는 중흥리에서 멈춘 뒤 마지막 준비를 했다. 비포장 도로의 양편은 옥수수 밭인데, 수확한 뒤라 줄기가 말라있었다. 도로에는 드믄드믄 가는 나무로 된 전신주가 서있었다. 이들 전신주에는 단지 한 가닥의 전선이 걸려있어, 풍경이 편안하게 마음을 끌었다. 나는 고원을 의식하기 시작했으며, 약간 내가 우뚝 솟아있는 듯이 느꼈다. 우리의 양 옆으로는 백두대간의 두 산줄기가 뻗어있었는데, 조용한 공기가 따스했으며, 기계, 자동차, 비행기 따위가 전혀 없고 우주를 채우고 있는 적막만이 있었다. 그 순간을 더 순진무구하게 만들려는듯, 멀리서 초등학생들의 합창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내가 그 감미로운 노래 소리 쪽을 보았는데, 마을 중앙에 파란 소나무들이 보였다. 철옹산이 배후를 가리고 있어서, 풍경이 다소 초현실적이었다. 우리 자동차는 마을의 끝자락에 있는 흙길 끝에 정차했다. 거기에 여러 명의 아이들이 있는 탁아소를 보고 내가 놀랐다. 아이들이 의아해하는 듯한 무표정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이 작은 마을은 자랑스럽게 노력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이 마을이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벽지여서 그들은 별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완전히 자급해야 할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 마을은 아이들에 배려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창고에는 수확한 옥수수가 차있었고, 지붕에도 푸성귀를 말리고 있었다. 집들은 낡았지만 안정되어 보였으며, 나무판자로 된 울타리가 있었는데, 멧돼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일부 큰 밭 주위에 나뭇가지를 엮은 담이 쳐져있었는데, 이것도 멧돼지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 밭 안쪽에는 새로 일군 고랑 위에 옥수수 대의 단들이 놓여있었다. 더러 작은 밭에 김장용 배추가 잘 자라 있었다. 이곳은 억세고 건강한 작은 마을이었다.

이제 등산을 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이미 높은 곳에 와있었기 때문에 철옹산이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다. 리 씨가 마을 사람에게 물어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우리는 시들은 옥수수 대들 사이에 있는 오래 된 우차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쪽 밭에서는 갈색 피부의 건장한 40대 농부가 손으로 땅을 갈고 있었는데, 담록색의 약간 두꺼운 인민복을 입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이 이런 옷을 입고 있었는데, 실용적으로 보였다. 한편 역시 잘 맞는 인민복을 입은 10대의 아들은 달구지를 끄는 소를 자랑스럽게 몰아 얕은 경사를 오르고 있었다. 옆에는 염소 떼가 자유롭게 있었다. 내가 지나가면서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어보였는데, 어린 소년은 머리를 약간 숙인 채 고삐를 끌면서 한 눈은 소를 보고 다른 눈으로는 나를 보았다. 조금 뒤 그가 나에게 미소를 보였다. 우리가 여기서 만난 것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여기서는 철옹산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경사면이 가파랐는데, 여기저기에 어깨 높이의 가지가 빽빽한 관목들과 가는 나무들이 있었다. 그 위로는 바위 절벽이 있었지만, 돌아갈 길이 있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앞을 자세히 보았더니 분명한 산길이 보이지 않았다. 곧 우리는 경사면을 오르기 위해 늦 가을 나무들로 엉켜있는 정글을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때때로 일부 가이드가 리지 등반에 많은 경험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우리가 산을 오르기 위해서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능선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여하간 내가 그들과 시비를 가릴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서 나름대로 산행을 즐기려했다. 빽빽한 잡목 숲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는데, 곧 협회원인 황숭철과 황철영은 (두류산 등산 때도 그랬듯이) 약삭빠르게 뒤쳐져서 보이지 않았다. 앞의 위쪽에서 나이를 더 먹은 리 씨와 석 씨가 길을 내고 있었고, 삼각대까지 넣은 무거운 카메라 배낭을 멘 나는 올라가느라 진땀을 뺐다. 때때로 엉켜있는 나뭇가지들과 가파른 경사뿐만 아니라 미끄러운 데도 있어 짜증이 났다. 나는 상황에 대해 더 화를 낼 수도 있었으나. 꾹 참았다. 우리가 일단 정상에 오르면 이런 고난은 겪을 가치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약 한 시간 뒤 나는 빽빽한 숲을 빠져나가 리 씨와 석 씨를 만났다. 그런데 앞에 10m 높이의 절벽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암질이 물러 보였다. 돌아갈 길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프리 클라이밍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북한의 깊숙한 곳에 있었고 외부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절벽면을 이루고 있는 바위는 쉽게 부스러졌는데, 여기저기에 풀 단과 작은 나무의 뿌리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 미끄러지는 실패를 겪은 뒤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 몸이 가벼운 리 씨가 선두에 서고 내가 카메라 배낭을 그에게 전달한 뒤 그와 합류하고 다시 그가 올라간 뒤 내가 배낭을 올려보내는 방식을 택했다. 석 씨가 뒤에 섰는데, 그의 임무는 만약 앞 사람이 배낭을 떨어뜨리면 그것을 잡는 것이었다. 그가 배낭과 함께 떨어져서 죽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만약 그런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서투른 서양인의 카메라 배낭 때문에 사망한 것이 될 것이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이 절벽을 오르는 등반이 다소 겁을 주고 있었다. 나에게 10m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직벽을 오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북한의 한 가운데에서 의욕을 보이는 두 북한인과 함께 이 위험한 등반을 하는 것이 나로서는 무척 즐겁게 느껴졌다. 우리가 팀으로 등반하여 절벽 위로 올라갔더니, 기울어진 레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또 다른 장애가 있었다. 먼저 것보다 작은 5m 높이의 절벽이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별 어려움 없이 빨리 올라갔다. 아직 아래에 있을 두 황 씨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무사하기를 바랬다. 우리가 마지막 절벽 꼭대기의 잡목을 헤치고 나가 곧 능선에 올랐다. 건너편을 내려다본 우리는 황당함을 느꼈다.

Team Cholong-sanCholong-san Cholong-san plateauCholong-san maize fields

아래로 계곡이 있었는데, 그 끝자락에 산길이 있었다. 나무 가지들로 덮여있었으나 노출된 흙의 가는 선을 볼 수 있었다. 그 산길은 나중에 마을 쪽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내가 그 길을 가리키면서 내 한국어 실력을 최고로 발휘하여 웃으면서 외쳤다. “봐요, 이 산에 오르는 길이 있어요.” 두 사람도 그 길을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끄떡이어 인정하면서 억지로 웃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아직 정상에 도달하지는 않았는데, 여기까지 아주 어려운 방법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우리는 두 황 씨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드디어 그들이 올라왔는데, 그들도 길이 있다는 것이 뜻밖이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 모두는 필요 없이 위험한 고생을 한 사실에 대해 마구 웃을 수 있었다. 계곡 길로 왔으면 아래에서 위까지 한 시간 걸렸을 텐데, 수직 벽을 오르느라고 두 시간 반을 소비했던 것이다. 나는 영어를 말할 줄 아는 황숭철에게 우리가 조금 바보짓을 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요. 이것은 우리 팀의 극기 훈련이요.”라고 그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약 30분 더 올라가 능선에 도달하고, 다시 올라가서 우회하여 계곡 꼭대기에 도달했다. 거기서 나무꾼의 산길에 접어든 뒤 철옹산의 정산을 밟게 되었다.

정상 지역은 왜소한 나무들이 있어 별로 볼품이 없었다. 쭈글쭈글해진 빛바랜 나무 잎들이 바닥에 널려있었는데,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렸다. 일행들은 앉아서 정상에 올라온데 대해 아주 만족해하면서 등정 과정에 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혼자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수목한계선에 구멍이 뚫린 곳을 발견하고, 사진 찍기에 좋은 각도가 있기를 바랬다. 늘 그렇지만 여기서는 빛이 쉽지 않았다. 강렬한 햇살이 낮게 깔려서 남쪽 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그러나 역시 경치가 아주 멋졌으며, 고원 지역을 잘 조망할 수 있었다. 아래 마을에서 내가 높이 솟아있는 듯이 느꼈다면, 여기 정상에서는 내가 떠가는 듯이 느껴졌다. 내 아래에 평평한 황금색의 고원이 저쪽으로 펼쳐져있었고, 작은 산들이 여기저기에 섬처럼 놓여있었다. 그곳은 거대한 골프장처럼 보였는데, 다행히 골프장은 아니었다. 이 장면이 성서에 나오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고원이 홍해처럼 갈라져있고 양 옆에 백두대간이 물이 얼어 벽이 된 것처럼 보였다. 산신령의 허락을 받아 금새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다시 고원을 덮쳐버릴 듯이 보였다. 조망이 끝없이 뻗었다. 아마도 개마고원의 축소판이 아닐지. 글쎄 모르겠다. 고원 여기저기에 작은 산들이 솟아있었는데, 마치 조물주가 대지를 평평하게 만들어놓은 듯이 보였다. 일행들이 내 뒤에서 웃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내가 짐작컨대, 그들은 멧돼지를 잡아 죽이는 제일 좋은 방법에 관해서 말하는 듯했다. 한반도 전역에서 사람들은 멧돼지를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먼 지평을 바라보면서, 코리아의 산 속에서 아무도 정치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은 사실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여기에서처럼 남한에서도 그랬다. 나는 늘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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