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의 예정에 없던 산행 – 북대봉

로저 셰퍼드 번역 한영환
평안남도 신양군 10월에 2011
 

백두산과 지리산을 굳건히 연결하고 있는 거대한 산의 줄기인 백두대간은 나한테 많은 흥분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백두대간은 신비하고 독특한 산 문화로 한반도를 연결하고 있다. 지도에서 한국을 보면 산의 이름들이 점재하고 있는데 그 산 이름들은 바위에 새겨진 글씨처럼 한국인의 시적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다. 북한에서의 나의 작업의 일부는 산들이 한국인에게 끼친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찾는 것이다. 백두대간은 이를 위한 나의 주된 과제이다. 남북한이 정치적으로 매우 다르기 때문에, 나의 이런 탐구에서 나는 흔히 남북한이 하나였을 때의 그들의 역사를 고려하게 된다.

우리는 평양에서 동쪽으로 약 60 km 떨어진 평양남도 희창이라는 작은 읍에 머물고 있었다. 오늘은 100 km 북쪽에 있는 백산(1449 km)에 갈 예정이었다. 이 산은 함경남도의 금야강의 서쪽에 뻗고 있는 백두대간에 자리잡고 있다. 늘 그렇듯이 내가 신산경표에서 산을 지적하면 인솔자들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려고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흔히 이른 새벽에 북한의 시골을 자동차로 달렸는데, 늘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포장되지 않은 흙 길이 산에서 흐르는 맑고 깨끗한 냇물을 따라 구불구불 나아갔는데, 그런 산기슭에 작은 농촌 마을이 있었다. 10월 중순에서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는 시기여서 거의 매일 쾌청한 날씨를 보였다. 가을의 따가운 햇살로 인해 강산이 건조하고 마을의 똥개 털처럼 누런색이 되었다.

우리가 탄 도요타 자동차가 이런 작은 마을들을 지나갔는데, 가끔 검문소에서 멈추었다. 거기서 우리는 군인들에게 증명서를 보여주었다.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우리가 산에 더 접근한 것이었다. 세밀하고 정확한 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흔히 나는 다른 때 길을 모르는 땅에서 헤매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그렇게 방향을 모르고 다니는 것도 나에게는 무척 재미있었다. 내가 남한의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얼마나 즐겼는지를 상기했다. 나는 여러 번 몇 주일 동안 남한의 산들 속의 미로에서 시간의 흐름도 모르고 책무도 망각한채 이 절에서 저 절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돌아다니면서 더 없는 행복을 느꼈던 일들이 있다.

우리가 신양이라는 작은 읍을 통과할 때 나는 우리가 이미 남강지맥을 횡단해 백두대간에 더 다가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는 느닷없이 북대봉(1326m)의 진입구를 만났다. 그 산은 청두무지맥 근처에서 백두대간을 벗어나 있었다. 그 산 입구에 커다란 시멘트 간판이 있었는데, 선명한 색으로 산길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차를 세워 그 간판을 보고는 예정에 없지만 이 산에 올라가 보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갖고 있는 다른 지도들을 조사했다. 나의 한 지도는 아주 자세하지는 않지만 도로가 표시되어있고 한글과 한문으로 표기되어있었다. 그 지도는 내가 서울의 중앙지도사에서 산 것이다. 내가 지도상에 들어가서 좋은 북한 지도를 달라고 했더니, 1992년에 제작한 두 장으로 된 62만분의 1 지도를 주었다. 내가 그 지도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자, 점원들은 감격하면서도 나의 야심찬 북한 산행에 우려하는 빛을 보였다.

우리는 한문으로 표시된 도로 지도를 땅에 펴놓고 거리를 계산했다. 조용한 시골에서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더니 아기를 등에 업은 젊은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가고 있었다. 내 뒤에서는 나무 지팡이를 움켜쥔 한 늙은 농부가 염소 떼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이 강둑을 건너갔는데, 강둑에는 한 버드나무가 넘어진 발레리나처럼 쓸어져있었다.

우리가 탄 자동차는 같은 강둑을 넘고, 북대봉으로 가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작은 목조 사무실을 지나자 이 지역의 입구로 보이는 문이 있었다. 자동차는 이 열려있는 문을 정차하지 않고 획 통과했다. 그 뒤 꼬불꼬불한 산길을 약 1 km 올라가니까 길이 끝났는데, 그곳에 두 젊은 병사가 있는 작은 야영지가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한 뒤 북대봉의 볼거리들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그 산길은 가꾸어져있었으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잠시 뒤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한 장소에 도달했다. 그 곳은 일제 강정기 때 항일 게릴라 전투를 벌인 김일성의 한 비밀 기지였다고 하는데, 여러 명의 젊은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런 항일 게릴라들이 백두대간과 그 정맥들을 이용했다고 한다.

잠시 뒤 우리가 하산하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거의 달리듯이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올라오는 한 젊은 여군과 만났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서였는지 그녀의 볼이 붉게 홍조를 띄고 있었다. 우리를 보자 그녀가 미소를 지었는데, 아주 예뻤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리가 먼저 통과한 문에 그녀가 주둔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차를 세우고 말했으면 그녀가 우리의 안내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비밀 항일 기지에 관해서 이미 우리가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하산하여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 여군은 그 지역에 관해서 추가 설명을 해주었다. 그녀가 말하고 있을 때 해가 따뜻하게 비추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황록색 군복은 한국전 때 중공군이 입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녀의 모자에 달린 붉은 별은 공산주의를 나타내는 것인데, 그녀의 볼과 그녀의 밝은 붉은색의 노트북과 잘 어울렸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여 우리가 나무에 걸터앉아 들었는데, 가사는 모르겠지만, 혁명가 같았다. 그녀는 산 계곡에서 나타난 오페라 가수 같이 노래를 멋지게 불렀던 것이다.

Secret partisan campsite.Mother and babyPastoral amblingsBukdae-bong guide.

우리 모두는 자동차에 타고 산길을 내려갔다. 차 안의 자리가 비좁았기 때문에 여군 안내원은 거의 내 무릎에 앉은 듯이 되었다. 나는 남자 동료에 밀착되는 것보다 그녀와 붙어있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고 말했더니, 모두 웃었다. 자동차가 사무실 문에 정차하여 그녀를 하차시켰는데, 그 뒤에도 우리들은 여전히 나의 발언 때문에 웃었다. 거기서 일단의 병사들이 모여있었는데, 연장자인 한 장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가 나의 인솔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먼저 자동차가 정차하지 않고 문을 통과한 것을 따지는 듯했다. 우리가 차를 멈추고 우리의 신분을 밝혔어야 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한참 뒤에 이야기가 잘 풀렸다. 우리는 모두 서로 악수를 나누웠다. 한편 이때 내가 그 여군 안내원에게 나와 결혼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녀가 더욱 얼굴을 붉혔다. 우리는 다시 즐겁게 길을 떠났다.

원래의 목적인 백산을 향해 우리 자동차가 조용한 시골을 달리고 있을 때 나는 그 예쁜 여군을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북한에 와서 호텔이나 마을에서 이곳 여자들과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인솔자인 황에게 내가 북한 여자들에게 집적거려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가 차에 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질문을 농담조로 통역하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면서 괜찮다고 했다. 황은 그것이 재미있을 것이며 걱정할 것이 없다고 그들이 말했다고 나에게 전했다. 이유는 여자들도 기분 좋아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늘 성적 매력보다 전통적인 한국적 모습 때문에 북한 여성들에 매력을 느껴요.” 하고 내가 덧붙였다. 황이 이 말도 통역하자 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황이 “당신이 남조선의 김삿갓인줄 아는데, 여기서도 그래도 괜찮아요.” 하고 말하자 다른 사람들이 더욱 크게 웃었다. 산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도 구경하지만, 또한 사람과도 만나게 되고 우정도 쌓게 마련이다. 아마도 나는 이곳에서 그들과 산행을 하면서 농부든 군인이든 산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우정을 맺고 있는지 모르겠다. 강산의 중립성이 우리 모두를 단순하게 만들고 있다.

이날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앞으로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에 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미래의 나의 책을 위해 한국인들이 역사를 통해 갖고 있는 차이를 극복하고 사실적이면서 용납되는 내용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북한의 차이를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어떤 형태의 공통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인지가 그것을 도울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One Comment

  1. 임종수 2015/06/02 at 15:02 #

    Mr. 로져
    반갑습니다.
    좋은 사진을 담는 사람을 만난것이 반갑고
    사진속의 장면들이 내가 좋아하는 산이어서 반갑고
    그 산들이 우리 강산이어서 더 반갑습니다.

    오늘 후원을 했고 책이 배달되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울산에 살고 있는데 4명의 자녀들과 홈스쿨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임종수라 합니다.
    노란 만병초를 전경으로 두고 담은 백두산사진 참 좋아합니다.

    좋은 사진들을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울산에 오시면 맛있는 밥먹으면서 산 얘기도 아이들과 같이 나누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Post a Comment

Your email is never published nor shar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