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사계 다큐멘터리

“로저 동무, 저기 좀 보세요. 동무가 텔레비죤에 나올 거 같애요.” 황이 소리쳤다. 눈을 들어 보니 평양역 앞의 대형 옥외 모니터에 코리아반도(어디서 부르느냐에 따라 ‘한반도’나 ‘조선반도’가 되겠지만)의 호랑이 지도 그림이 떠올라 있었다. 내가 전시회 팜플렛에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그림인데, 어쩌면 전시회와 관련된 내용일까?

그 때 황이 말했다. “아, 그냥 박사들이 호랑이 지도의 옛이야기를 설명하는 것 같습네다.”

“봐요, 저건 내가 2012년 탐사 때 가져온 그림과 똑같아 보이는데..”

아직도 버스 차창 밖을 내다보며 찬찬히 살피고 있던 황이 대꾸했다. “맞아요, 틀리지 않습네다.”

“그럼 저 그림의 원조는 로저 셰퍼드로구만요!” 내가 농담했다.

“하하, 그건 아니지요… 우리도 알다시피 시초는 최남선이지요.” 황이 내 말을 정정했다.

2012년의 백두대간 탐사 때 나는 호랑이지도가 그려진 광목 보자기를 선물로 가져왔었다. 북한 사람들은 호기심을 보이면서 그것이 언제 어디서 나온 것인지 그 유래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남한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해상도 높은 jpeg파일을 구해서 그 유래에 관한 글과 함께 이메일로 보내주었었다. 그 유래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는 않았지만, 호랑이지도가 일제 강점기 때 나온 것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1903년에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조선전도’를 펴내면서 한반도의 모양을 겁 많은 동물인 토끼에 비유했다. 그래서 1908년 11월, 한국 최초의 월간지 [소년]을 창간한 한국의 학자 최남선은 그 창간호에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으로 그려진 흑백의 한반도 그림을 특집으로 실었다. 물론 이것은 한국인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이 잡지가 인기를 끌자 일본은 그것을 1911년 5월에 결국 폐간시켜버렸다.

“그럼 저게 내가 당신에게 보내준 바로 그 jpeg 파일이란 말이죠?”

“예, 맞아요. 동무가 보내준 자료를 김일성 대학의 교수들에게 전해줬댔습네다.”

이야기를 좀더 끌어가기에 적당한 때인 것 같았다.

“호텔에 가서 오늘 밤엔 우리가 별러왔던 의논을 좀 해봅시다. 오케이?”

“생맥주 두잔 줘보슈~.” 나는 주워들은 구례지방 사투리를 최대한 흉내 내서 맥주를 주문했다. 빨간 옷에 단발머리를 한 예쁜 종업원이 귀여운 미소를 던지고 맥주를 가지러 갔다. 맥주는 서리 낀 파인트에 담겨서 왔다. 호박색의 액체 위에는 1인치 두께의 하얀 거품이 덮여 있었다.

“건배!” 우리는 유리잔을 부딪고 한 모금씩 쭈욱 들이켰다. 다사다난했던 하루여서 맥주 맛이 더 좋았다. 바에는 손님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아시지요? 우린 아직도 백두산의 사계절 기록영화 촬영에 관심이 아주 많습네다.” 황이 먼저 운을 뗐다.

그건 내가 운을 떼기엔 실망스러운 주제였다. “예, 고맙습니다. 나도 알아요.”

2014년에 나는 북한의 관계당국과 경남MBC의 공동사업 주선권을 나에게 위임하는 공동제작합의서에 서명을 받으러 평양에 왔었다. 우리의 계획은 코리아와 해외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백두산의 사계를 담은 세계적 수준의 야생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서명된 서류는 남한으로 와서 경남MBC의 심길보 프로듀서에게 넘겨졌다. 그는 2013년에 정전 60주년 기념방송물로 주목 받은 다큐스페셜 [최초공개 북한의 백두대간]을 제작했었다. 그는 그 서류를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지원금 신청을 위한 제안서의 일부로 제출했다. 우리는 최종후보명단에까지 올랐지만 결국 예산편성 대상에서 탈락해버려서 나는 매우 실망했었다.

The supposed first depiction of the Hanban-do tiger.금강산 생 맥주.시원한 막걸리.대동강 평양.

나는 손가락으로 맥주잔을 톡톡 쳤다. “예, 우리도 아직 관심 많아요, 황동무. 하지만 심길보씨 말로는 경남MBC의 운영진이 바뀌는 바람에 가능성이 없어졌다고 해요.”

내 마음은 백두산으로 가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촬영팀을 북한으로 데려와서 2년에 걸쳐서 철따라 변해가는 백두산의 풍광을 담는 것이었다. 전해오는 이야기들과 야생생태,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생활상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우리는 코리아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을 만들고, 그것이 남북 양쪽에서 모두 방송되게 하고 싶었다.

그건 큰 도전이었지만 시도는 해보리라고 생각했다. “나의 꿈은, 남측 제작진과 북측 제작진이 힘을 합쳐서 이걸 함께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하지만 현재 상태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려울 겁네다.” 황이 분명히 잘라 말했다. “외국 촬영팀이 허락을 받기가 더 쉬울 겁네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외국 제작진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나는 바를 둘러보았다. 한쪽 끝에 커다란 수조가 놓여 있었다. 길다란 철갑상어 한 마리가 수초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저렇게 못생긴 물고기가 어쩜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있을까.

“그러니까 자료를 수집하는 데엔 외국 제작진을 기용하는 편이 정치적으로 더 수월할 거란 말이죠?”

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작전을 약간 바꾸기로 했다.

나는 살짝 거만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황동무는 삼지연과 백두고원에서 한번에 두세 달쯤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요 뭐, 못 할 게 뭐 있습네까? 전에도 거기서 지냈는데요, 뭐.” 그는 그 지역에서 했던 우리의 작업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겨울철은 어떨까요? 죽여주겠죠?” 내가 말했다. “다니려면 스키가 있어야 할 겁니다. 스키 탈 줄 알아요, 황동무?”

“아뇨.” 그는 미소와 웃음을 동시에 터뜨렸다.

“저도 몰라요.” 나도 마주 웃었다. “우린 다리가 부러지거나 거기서 죽을 수도 있어요.” 빈정대는 투로 내가 말했다. “목숨이 붙어 있다면 고통을 참으면서 병원까지 먼 길을 가야 하겠지요.”

그렇게 칼바람 부는 동토에서의 동계촬영을 계획한다는 것은 두렵고도 모험적인 일이었다.

“일부 작업은 눈썰매차를 타고 할 수도 있어요.” 황이 말했다.

그의 말에 지난번 탐사에서 우리의 운전기사 노릇을 했던 한명수가 떠올랐다.

“아, 한명수 동무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내가 물었다.

“잘 지내고 있습네다. 사실은 오늘도 그와 통화를 했습네다. 지금은 백두산에서 운전을 하고 있답네다.”

“그 동문 정말 운도 좋아, 안 그래요?” 나는 산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건방진 미소에 어딜 가나 물고 있는 담배..

“그가 소식 전해달라고 하였습네다. 또 탐사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요.”

“담에 통화하거든 백두산 사계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면 우리를 태우고 헬리콥터를 조종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세요.” 나는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공중에 띄우면서 말했다.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자 잔 속의 맥주가 출렁거렸다.

“그가 뭐든지 운전할 수 있다고 얼마나 큰소리쳤는지 기억하죠? 헬리콥터도 조종할 수 있다고..”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 동무는 실제로 공군에서 근무했습네다. 그러니 누가 압네까?” 황의 대꾸였다.

나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아무렴, 놀랍지 않지.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윗입술에 묻은 거품이 맛있었다. 등을 다시 뒤로 기대면서 거품을 핥았다. 밝은 오렌지색 비닐 소파 등받이 위로 양팔을 뻗었다. 소파 색깔이 너무 튄다. 나는 [백두산의 사계] 제작예산 견적을 내보았었다. 북한측의 허락과 지지는 받아놓았지만 아직도 후원자, 큰 후원자가 있어야만 했다. 그걸 제작하려면 많은 돈과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평양.Soup house in Samji-yon 국수집 삼지연 량강도.Paektu-gowon with Paektu Daegan in background.Bar waitresses in pyongyang.Paektu-plateau 백두고원 2012년06월.

“백두산과 한라산의 수집용 우표를 찍어내자는 당신의 생각도 좋아요.” 황이 말했다. 천정의 전등에서 빛이 45도 각도로 내려와서 황의 얼굴 윤곽을 비춰내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담배연기가 공기 속에서 춤을 췄다.

그 아이디어는 평양의 우표 가게에 들렀을 때 떠올랐었다. ‘남북 백두대간 사진집을 가지고 기념우표를 만들 수도 있겠는걸.’

“그렇죠, 그걸 남쪽과 공동으로 발행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남북이 하나의 세트로 말이에요.” 내가 물었다.

“그건 모르갔습네다.” 황의 대답이었다. 황이나 나나 그런 결정을 내릴 힘은 없는 사람들이다. 단지 아이디어를 내놓는 능력밖에 없다. “하지만 평양에 있는 우표발행 관계자들에게 그들의 생각은 어떤지를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볼 수는 있지요.” 그가 결론을 내렸다.

“서울에 가면 저도 그걸 알아보죠.” 나는 우표를 공동으로 발행할 때 생길 수 있는 일차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았다. 원화의 서로 다른 환율 같은 문제 말이다.

“한 잔 더 할까요, 동무?” 이 맥주는 잘 넘어간다. 옛날 영국식 양조기술로 이 양각도 호텔에서 만든 금강산 생맥주다.

“내가 내년에 백두대간 사진을 더 찍으러 돌아온다면 동무의 바쁜 일정 중에도 날 도와줄 시간을 내줄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그러고 싶습네다. 사무실보다는 산에서 있는 게 훨씬 더 좋지요.” 그가 대답했다.

“정말요?” 내가 웃었다. “당신네 도시남들, 등산할 때는 맨날 불평만 늘어놓았던 거 다 기억하고 있는데요?”

“하하 예, 그래도 우리나라 구경은 많이 해둬야갔습네다. 그건 정말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었습네다. 그런데다가 산은 정말 북조선과 남조선의 동질성을 깨우쳐줍네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산을 통해 남북의 동질성을 깨닫는다’ – 그것은 우리가 이 작업을 위해 만들어낸 표어였다. 그것이 우리의 진지한 좌우명이었다.

사람들의 이야기소리가 바를 가득 채웠다.

“좋아요, 그럼 내가 탐사할 산 이름 서른 몇 개를 보내드린 거 기억하죠?” 내가 황을 바라봤다. “내 생각엔 6주씩 두 번에 걸쳐서 탐사하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그가 나의 말을 새겨볼 수 있도록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사진집이 다채로워지도록 봄과 가을에 걸쳐서 말이에요.”

황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들었다. 그래서 한 마디 덧붙였다. “물론 이것도 북과 남 양쪽에서 전시하고, 사진집도 따로 낼 겁니다.”

어쩐지 모든 일이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이렇다 할 만한 백두산 겨울 사진도 없어요. 일출, 일몰, 그리고 보름날의 월출 풍경도요.”

일출을 촬영하려는 우리의 첫 번째 시도는 숙취에서 덜 깬 상태의 헛발질로 우스꽝스럽게 끝났다. 우리는 눈보라 속을 운전해 올라갔는데, 세찬 비바람 속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다가 결국은 허탕만 치고 돌아와야 했었다.

황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담뱃재를 털고는 낯익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건 내가 너무 앞질러가기 시작할 때 보이곤 하는 표정으로,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곁눈질로 살짝 째려본다. 의심스럽다는 뜻이다.

“월출이라니요?” 그가 말한다.

나는 흥분해서 담배를 재떨이에 내려놓고 허리를 편다. 그리고 양팔을 펼쳐서 백두산의 거대한 분화구의 모습을 본뜬다. 바텐더가 지켜본다.

“봐요!” 내가 외친다. “얼어붙은 천지 위로, 백두산 얼음 봉우리에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어요.” 마치 무슨 종교적인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기라도 할 것처럼 나의 뻗은 양팔이 올라간다. 바텐더의 눈길이 뻗쳐진 나의 양 손끝을 따라간다.

“오.. 케이….” 그는 천천히 반응하고 나서 맥주를 길게 한 모금 들이킨다.

그가 무슨 대답을 주려고 하기도 전에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황과 나는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영어로 노래하고 있다.

“자 동지들이여, 모이세

최후의 전투를 맞이하세.

혁명가革命歌가 인류를

하나로 묶어준다네.”

물어본즉,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유래되어 내려와서 전 세계에서 널리 불리고 있는 혁명가(the Internationale)라고 한다.

그 세레나데 위로 황이 소리친다. “헤이, 김일성 광장에서 군중무용을 춘다는데 가서 봅시다.”

우리는 잔을 비우고 나선다… 이 일은 다음 번에 마저 의논하리라.

 

 

04_mass dance in pyongyang

Mass dance in Pyongyang

Roger Shepherd©2015

평양서 열린 백두대간 사진전시회 Daum storyfu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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