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대국 만세!”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갔다가 북한을 통해서 다시 남한으로 돌아올 때, 나는 똑같은 대기와 똑같이 푸른 하늘에 같은 산하, 같은 언어를 가진 하나의 민족이 사는 한반도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 단지 철조망 하나가 그들의 신념을 갈라놓고 있을 뿐이다.

평양에 착륙하니 순안 국제공항은 새 청사를 완비해놓고 있었다. 조선뉴질랜드친선협회의 동지들인 박경일 협회장과 황승철 사무국장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해마다 대담한 사업을 기획하여 이렇게 꼬박꼬박 만나고 있다.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담소를 나눌 시간이다. “사진이 무사히 도착했습니까?” 내가 황승철 동무에게 물었다.

“예, 로저 동무. 무사히 잘 도착했습네다.”

“파손은 없었나요?”

“아니요, 아주 훌륭하더구만요.”

차가 평양 시내를 지날 때 많은 군중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 행사를 위해 대규모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마치 축구결승전을 보러 온 팬들의 행진과도 같이, 열정적인 찬가가 거리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인민대학습당에 마련된 전시장소를 향했다. 인민대학습당은 평양 시가지의 중심부인 김일성광장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인상적인 곳이었다. 전시회의 명칭은 ‘조선해방 70돐 경축 백두대산줄기 사진전시회’로 정해졌고, 전시기간은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이었다.

Kim Jeong Ah, Hwang Sung Chol, and me.Mansu-dae, Pyongyang.Inside the Grand Peoples Study House©P.Wilson.Pyongyang students on the intra-net.

번쩍이는 샹들리에가 드리워져 있는, 화강암 바닥과 기둥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홀에 당도하자 거기에는 2014년에 방문했을 때 만났던 친구가 있었다. “김정아 동무, 안녕하십니까?” 내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졌다. “로저 동무, 잘 지내셨습네까? 남저선에서 별 일 없이 지내십네까? 요새는 지리산에서 사신다고 들었는데, 어떻습네까?”

안부를 나눈 후에 우리는 전시장을 두루 살펴보았다.

“사진이 놀랍습네다, 로저 동무. 거의 3D 같이 보입네다.” 김정아 동무가 말했다.

‘남한의 인쇄업자와 액자상이 역시 잘 해주셨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와, 아주 잘 전시해놓으셨네요.” 내가 전시 상태를 칭찬했다.

“이젤과 사진을 진열하는 작업은 어제 시작했습네다.” 그녀가 대답했다. “이곳의 학생들이 관심을 아주 많이 보이면서 우리를 도와주기까지 했디요. 학생들은 특히 남조선의 산에 관심을 많이 보였고 여기 북조선의 산에도 관심을 보였는데, 기건 대부분의 인민들이 그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디요.” 그러고 나서 김정아가, “남쪽의 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몰랐는데 이젠 알갔시요.” 하는 말을 덧붙였을 때, 나는 그 순간을 마음속에 자랑스럽게 새기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나로 하여금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감동이었다.

“로저 동무, 오늘 오후 개관식에 오실 VIP에 관해서 당부해둘 말이 있습네다.” 황승철이 이렇게 나를 황홀경에서 깨워놓는 바람에 나는 그쪽을 돌아봤다. 그는 고상한 인상의 잘 생긴 청년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분은 김정숙 동지이신데 대외문화련락위원회의 위원장이시자 지도부의 친족 중 한 분이십네다.”

“그런데요?” 내가 물었다.

“김정숙 동지는 우리나라에서 높이 존경받고 있고, 위대하신 영도자 김일성 수령 동지의 조카분이십네다.” 내가 촌수를 다 꼽아보기도 전에 황승철이 눈치 빠르게 덧붙였다. “김일성 수령 동지는 대가족 집안에서 태어나셔서 숙부님 백부님들이 많았답네다. 존경하는 김정숙 동지는 올해 여든네 살이십네다.” 이번에도 생년을 계산해보려고 애쓰는 마음 한편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이 김일성 주석 전 부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 때 황승철이 다시 말했다. “동지께서 연로하셔서 걱정이 됩네다. 보시다시피 전시관이 꽤 넓으니까 동지께서 연설을 마치고 나서 동무가 사진을 구경시켜드릴 때, 사진마다 멈춰서 다 설명하려고 하디는 마시고 지름길로 슬쩍슬쩍 지나쳐가서 너무 많이 걷디 않으시도록 해주시라요.”

우리는 점식식사를 마치고 전시장소로 돌아왔다. 300명쯤 되는 큰 군중이 모여 있었고 조선중앙통신, 로동신문, 그리고 평양 주재 AP 통신사의 기자들도 나와 있었다. 나는 도착즉시 뒤편의 접빈실로 안내되었다.

잠시 후에 김정숙 위원장이 여비서와 몇 사람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들어왔다. 그녀는 뚜렷한 존재감과 동시에 정감 있는 인상을 지니고 있었고, 말할 때는 상대방을 편안한 기분으로 웃게 만드는 친근한 노부인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그녀는 내 손을 두 손으로 잡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깊은 눈빛 속에서는 먼 별빛처럼 반짝이는 생기와 힘이 느껴졌다. ’살아오면서 참  많은 일을 보고 겪으셨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신에 대해서 많이 들었소, 셰퍼드 동무. 이런 사진을 찍기 위해서 온 데로 많이 다니셨다더구만요.” 그녀의 푸근한 마음씨에는 전염성이 있어서 나는 금방 그녀가 좋아졌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몰라서 나는 그냥 감사하다고만 말했다.

 “이런 일을 한 것은 동무가 맨 처음이기 때문에 이 사진은 아주 특별하오. 이 사진들은 북과 남의 인민들이 산을 통해서 하나가 되게 해주고 있소. 나는 이 사진이 국가적인 보물이라고 생각하오. 동무가 이런 일을 하는 데 대해서 우리는 정말로 고맙게 생각합네다.” 김정숙 위원장은 개회사 연설에서도 이 같은 감개를 다시금 표했다. 그녀의 연설은 마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일전에 내가 연설문을 준비하고 있을 때, 박경일 협회장이 내 연설의 맨 끝에다 한 마디만 덧붙여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었다. “무슨 말씀이시죠?” 내가 물었다.

“동무가 산과 관련해서 벌이고 있는 이 일에 어울릴 뭔가 강력하고 의미 깊은 말 말이요.” 그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생각난 듯이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봤다. “‘백두산 대국 만세!’ 같은 거 말이요.” 나에게는 그것이 이 유서 깊은 땅을 묘사하는 낭만적인 형용사로 해석되어서 좋았다.

그래서 나는 외쳤다. “백두산 대국 만세!!”

Esteemed Comrade Kim Jong Suk 김정숙 동지With Kim Jong Suk 평야 전시회김일성광장Opening of the 2015 photo exhibition 평양 전시회

‘존경하는 김정숙 동지’를 안내하여 사진을 구경시켜줄 차례였다. 나는 자칫 취재진이 그녀를 덮쳐서 넘어뜨리지 않을까 염려됐다. 그래서 그녀가 본능적으로 나의 팔을 잡았을 때, 나는 다른 팔로 그 손을 덧잡아서 잘 부축했다. 그녀의 손아귀 힘은 아직도 정정했다.

그녀를 사진들 앞으로 천천히 안내하던 중에 그녀가 멈춰 서면서 말했다. “북쪽의 많은 인민들이 한라산을 가보고 싶어 하오. 남쪽의 많은 인민들이 백두산에 가보고 싶어 하듯이 말이요.”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이 사진들이 남쪽으로 가서 거기서도 전시될 거지요?”

“예.” 내가 대답했다.

“다음에 평양에 다시 올 때 이 사진을 나한테 갖다 주실 수 있갔소?” 그녀는 한라산의 설경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기꺼이 갖다 드리죠.”

그렇게 지나가는 동안, 일부 사진들을 그냥 지나쳐 질러갈 일은 생기지 않았다. 김정숙 동지는 모든 사진 앞에서 멈춰 섰다. 그녀는 정말 관심 깊게 그것들을 보았다.

“진도 아리랑이라는 멋진 노래가 있소.” 그녀는 그 곡조를 읊었다.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웃었다. “당신도 아시오?”

“아뇨.”

그러자 그녀는 경상북도 문경새재의 사진을 가리키며 나를 보고 말했다. “그 노래 가사에 이 곳이 나오오.”

전시회 행사가 끝난 후, 나는 황승철 동무에게 통역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별 말씀을요.” 그가 대답했다. “어떻습네까?”

나는 그가 전시회에 대해서 묻는다는 걸 알았지만 대신 이렇게 대꾸했다. “김정숙 동지가 나에게 누굴 생각나게 했는지 아십니까?”

“아니요.” 그가 호기심을 띠며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둘러서 있었다.

“김정숙 동지는 지리산의 할머니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녀를 코리아의 다른 어디서 만났다면 나는 그녀를 그저 우리 동네의 여느 인정 많은 할머니처럼 여겼을 겁니다.”

황승철은 나의 느낌에 공감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궁금해 하자 그가 통역을 해주었다. 그러자 그들도 미소를 띠며 웃었다. 그들이 웃음을 그치기 전에 내가 덧붙였다. “지리산 마고할미 같아요.” 그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를 알아들었다.

‘조국해방의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평양 시내는 열기로 점점 더 달아오르고 있었고 내 안에서도 그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날 밤 늦게 호텔 방에서 나는 노트에 이렇게 기록했다. ‘산이 코리아 사람들의 얼굴에서 가면을 벗겨서 그들 내면의 진정한 정체성, 즉 분단과 체제에 의해 변색되지 않은 진정한 코리안의 혼을 드러내주는 것 같다.’

내일 우리는 판문점으로 간다. 여기엔 개인적으로 문제가 좀 있었다…

평양 2015

Roger Shepherd©2015

평양서 열린 백두대간 사진전시회 Daum storyfunding

Post a Comment

Your email is never published nor shar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