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 1323m – 잊혀졌던 북한의 산들

로저 셰퍼드 번역 한영환
평안남도 천내군 10월에 2011
 

 남한에서는 백두대간이 무엇인지 다들 잘 알고 있다. 남한에서 이 큰 산줄기는 지리산과 설악산 북쪽의 비무장지대(DMZ) 사이의 약 700km에 달하는 거리를 잇고 있다. 우리는 백두대간이 한국민의 정체성의 민족적 상징이며 큰 정신적 및 종교적 의의를 지닌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이것이 아웃도어 문화와 역사의 백과사전과 같으며 옛 문명들을 나누는 자연적 칸막이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한에서는 백두대간의 종주는 한국에만 독특한 자연에 대한 어떤 형태의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모든 등산가들의 꿈이라는 것도 알려져 있다. 어떤 이는 여러 해 동안 여러 차례의 주말을 이용하여 등산한다. 다른 이들은 이 산행이 주는 넉넉한 자유를 향유하면서 한번의 빠른 이동으로 종주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백두대간에 관해서 무엇을 알고 있을까?

남한에서 백두대간을 종주한 바 있는 나는 북한 쪽의 그것의 모습이 어떤지를 궁금하게 여겼다. 나는 한반도의 백두대간 전체에 관한 포토 에세이 책을 발간하고 싶었는데, 북쪽 백두대간의 답사되지 않은 부분의 촬영 허가를 얻기 위해 올해 초 평양에 있는 한 NGO 그룹과 교섭을 시작했다. 북쪽의 허락을 얻어 나는 2011년 10월 북한에 가서 16일 동안 머물면서 백두대간의 10개봉을 등정하고 4개 지역을 답사했다. 이것은 너무나 엄청난 경험이고 너무 큰 여행이여서 한번의 이야기로 모두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 임무는 “산들을 통해 코리아의 동질적인 정체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등정한 여러 산들 중의 한 산에 관한 한 여행기이다. 나로서는 이 이야기가 산들이 우리로 하여금 무관심을 버리게 하고, 그 곳에서의 우리의 산행의 즐거움과 선의를 나타내보려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여러 독자들이 나와 함께 북한의 백두대간의 등산 길에 오르고 허심탄회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내 이야기를 읽어주기 바란다.

Duryu-san looms.

Duryu-san looms.

2011년 10월 22일. 뒤덮을 듯한 위협적인 자태를 쳐다보면서 우리는 외경을 느꼈다. “내일 우리는 이 산을 오를 것입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그 산은 두류산(1323m)이었다. 그 산은 강원도, 함경남도 및 평양남도의 3개 도에 걸쳐서 백두대간의 해서 정맥의 교점이라는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 북한측 팀원들은 나한테 광기가 약간 있는 것을 느꼈다. 내가 ‘곰’의 문제를 꺼내어 다소 불안을 조성했다. 나는 우리 등반팀원 중에서 몸집이 제일 크고 영양 상태가 가장 좋아 보이는 친구를 몇 번 힐끔 보면서, 곰이 나타나면 내가 직접 처리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 방법은 곰한테 꿀 단지를 던져 곰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등산 동무들이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면서 나를 비웃었다. 나는 되웃으면서 만약 내 계략이 효과가 없으면 산에서 가장 느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살찐 친구를 향해 내가 유쾌한 농담을 던지자 그는 그제사 내 끈적한 장난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나의 서투른 농담으로 인해 북측의 등산 친구들은 문화적 다의성의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 이 침묵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땅바닥의 한 곳을 보면서 말없이 생각에 잠기게 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러자 그 침묵이 마치 나르는 깃털처럼 그 북한의 산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한 친구가 그 깃털을 잡아채듯이, 나더러 근처의 한 정자의 지붕 위로 올라가서 좋은 사진을 찍어보라고 과감하게 권했다. 경사가 60도나 되는 지붕 아래 끝 밑으로는 현기증 나게 하는 200m의 낭떠러지가 있었다. 내가 몸을 올리려고 노력했는데, 몸 무게로 인해 내가 지붕 아래 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덜컹 겁을 먹으면서 내가 미끌어 떨어지기 전에 내 늘어뜨린 발을 붙잡으라고 친구들에게 외쳤다. 나는 결사적으로 손으로 잡으려고 하여, 먼지 투성의 지붕 위에 긴 손가락 자국을 남겼다. 하늘 위에서 나는 독수리가 본다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내 몸부림을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아드레날린이 고조되어 북한의 백두대간의 이곳에서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그것이 기이하게도 타당하면서도 무섭게 느껴졌다. 밑에서 보면 내 행동이 아주 웃겼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내가 들을 수 있는 소리는 한바탕의 웃음소리였기 때문이다. 한편 나는 빨리 아드레날린에 반응하여 다시 외쳤다. 이번에는 조금 더 심각하게 외쳤다. 그랬더니 그들은 여전히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내 다리를 붙잡고 내가 안전한 땅에 내리도록 도왔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페인트 먼지를 뒤집어썼다. 우리는 북한의 텅빈 산 속에서 함께 마구 웃었다. 나더러 정자 지붕 위에 올라가보라고 권했던 남자가 특히 나를 보면서 크게 웃었다.

다음 날 우리는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났다. 밖은 굴 안처럼 캄캄했으며 공기는 우주 속처럼 조용했다. 나는 Land Cruiser 자동차의 뒤 쪽에 웅크리고 앉아서 손바닥으로 산꿀이 든 작은 병을 굴리고 있었는데, 차의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기괴한 조선 아코디온 곡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 음악은 다소 재즈풍의 Gene Kruger의 드럼 소리 같은 것에 의해 백업되고 있었다. 얼마 뒤 새벽이 가까워졌을 때, 자동차가 산간 도로를 달린 뒤 작은 시골 집에 도착했다. 줄에 묶인 개가 그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아주 커서 등에 안장을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이 우리를 보자 회색곰처럼 으르렁거렸다. 거기서 우리는 전날에 만났던 가이드인 송 씨와 합류했다.

희미한 적황색 빛 속에서 우리는 백두대간 주능선의 그림자 속에서 잠자고 있는 낡은 농가들 옆을 지나면서 산기슭을 걸어갔다. 나의 마음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 중의 하나에서 고립의 한가운데에서 방황했다. 한번은 내가 앞장서서 갔는데, 완만한 경사에 있는 굽은 길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그 굽은 길의 다른 편에서 한 젊은 병사가 내 쪽으로 오는 것이 갑자기 보였다. 우리의 눈이 동시에 놀라면서 마주쳤다. 깜짝 놀라고 충격을 느꼈다. 그 소년 병사가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빨리 행동했다. 그는 고양이처럼 덤불 속으로 뛰어들어가 사라졌다. 대포같은 사진기 삼각대가 밖으로 나와 있는 회색 배낭을 짊어지고 있는 백인을 보았으니 그가 동물처럼 잽싸게 도망친 것은 당연했다. 내 반응은 그렇게 활발하지 못했다. 오히려 아주 소심했다. 나는 그 사건을 모르고 있는 우리 팀의 뒤로 슬며시 가버렸다. 나는 기습을 예상하면서 우리 그룹 뒤에 서서 일단의 병사들이 있는 시골 집을 곧 지나갔다. 병사들은 무기를 보이지 않게 숨긴 채 진흙으로 지은 집 밖에 서있었다. 병사들은 이제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조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우리에게 접근하려고 들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나아갔다. 개울이 흐르는 좁은 계곡에 도달하여 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이 점점 좁아지고 가파라졌는데 우리가 계속 돌진했다. 팀원 5명 중 두 명이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늘 그렇듯이 등산에 덜 단련되었거나 뭄집이 큰 사람이 좌절하고 불평했다. 뒤에 처진 사람들에 힘을 불러일으켜주기 위해 그 중 한 사람에게 산신령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 칭호가 익살로 긴장을 풀어주고 그에게 새로운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이제 우리는 ‘한 시간 등반’ 예정에서 약 두 시간 반을 보내고 있었는데, 능선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서로에게 별명을 부쳐주면서 좌절을 익살로 바꾸었다. 민첩하고 몸이 가벼운 가이드(다른 사람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는 ‘한 시간 님’이라고 불렀다. 이 한 시간은 원래 그가 두류산 등반에 걸릴 것이라고 여긴 시간이었다.

드디어 우리가 능선에 도달했다. 북한측 사람들은 안도를 느낀 반면 나는 강한 흥분에 휩싸였다. 백두대간은 외로운 곳이었다. 찬 미풍이 일찍 겨울을 맞은 나무들의 잎이 없는 가지들 사이로 불었다. 나는 서서 미풍이 숲의 바닥에 쓰러져있는 껍질이 두드러진 나무줄기들에 불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미풍은 의시시한 이교도의 곡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이런 초현실적인 장면이 갑자기 날카로운 요란한 소리로 인해 방해를 받았다. 우리 모두는 그 요란한 소리가 난 방향 쪽으로 빨리 시선을 돌렸다. 곰과 같은 체격을 가진 산신령님이 피로하여 한 나무에 기대고 있었는데, 그 나무가 부러져서 그가 주능선의 해가 들지 않는 쪽 거의 500m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는 이 능선에의 인간들의 간섭 행위로 인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 터졌다. 우리들의 웃음이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이 능선이 아마도 전에 한번도 이런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Mr. Han Shigan and the Baekdu DaeganTeam Duryu-sanViews from Duryu-san

우리 인간들이 이곳에 왔다. 우리는 계곡의 기진맥진케 하는 가파름에서 벗어나 능선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주능선에는 희미한 길이 정상으로 꼬불꼬불 나아 있었다. 이 길은 멧돼지, 곰, 사슴 또는 고립된 이 산 속에 숨어 살았던 다른 것들이 만든 것이다. 다시 약 한 시간 뒤에 우리는 작은 공지에 도달하여 한 동안 쉬면서 조선의 산들이 펼치는 놀라운 경치를 바라보면서 감탄했다. 지평선은 끝이 없었다. 파란 산의 선들이 작은 쓰나미처럼 퍼져 나아가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는 귀신이 깃들여있는 듯한 북풍이 계속 울부짖으면서 능선 위로 불고 있었다.

다시 한 시간 뒤, 그러니까 우리가 높은 산의 고갯길에서 하차한 뒤 다섯 시간 뒤에 두류산의 작은 정상 지역에 도달했다. 갑자기 바람이 그치고, 우리의 북쪽 파란 하늘에 부드러운 구름 띠들이 연하게 펼쳐져있었는데, 손에 잡힐 듯싶었다. 남쪽으로는 겨울 해가 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우리의 얼굴을 따스히 비추었다. 우리는 강렬한 햇살 사이로 산들로 이루어진 지평선을 힐끔 보았다. 플라스마와 같은 산 색조의 지평선이 끝없이 분열하여 폭발적인 흰 망각으로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빠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여기서 서로 으르렁대는 적이며 정치적 반대자인 우리가 코리안들의 상징인 산들에 의해 함께 있게 되었다.

잡목숲으로 된 작은 정상 지역에는 누런 풀이 덮인 테이블 크기의 공지가 있었다. 거기에 햇살이 쪼이고 있었는데, 거기서 우리는 쉬면서 조망을 즐겼다. 식사 뒤 나는 일어나서 작은 산새처럼 봉우리의 다른 편과 잡목숲 속을 누비며 사진 촬영을 속행했다. 정상의 다른 편에서 나는 주능선의 등성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비밀 통로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다. 아무도 잘 몰랐던 이 옛 길은 과거에 문명과 역사를 한반도 전체를 통해 자유롭게 이동시킨 고대의 하이웨이였을 것이다. 아주 희귀한 위대한 순간이었다. 언젠가 내가 이 한반도의 큰 산줄기 전체 길이를 걸어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으로서는 이번 산행이 충분히 특별했다. 그것은 전례없는 시작으로 아마도 기회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선 나의 인생은 타임 캡슐처럼 느껴졌다. 내가 미래에 있는지 과거에 있는지 상관하지 않았다.

(로저 셰퍼드는 2012년 5월 다시 북한에 가서 6주 동안 사진 촬영 산행을 위해 개마고원과 백두고원이 포함된 평양남도, 함경남도 및 양양도에 갈 예정이다. 필자 연락처: www.hikekorea.com)

***번역자 의견***

필자의 영문 텍스트를 충실히 번역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필자는 아주 미묘한 느낌이나 생각을 아주 복잡하고 불투명한 문체로 기술했다. 필자가 너무 의욕적이어서 추상적이고 논리의 비약이 있다. 또한 영어권의 유머가 우리 독자에게는 크게 우습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 독자를 위해서는 과감한 개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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