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개성, 서울, 그리고 평양

6월 23일. “로저 동무, 당신 그 사진 가지구 륙로로 해서 평양까지 려행해보지 않갔소?”

나는 놀랐다! 미스터 원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의 북측 책임자였다. 그는 일찌감치 8월 15일 평양에서 열리는 광복절 기념 전시회에 전시할 액자에 든 사진들을 개성을 통해 보내는 데 필요한 허가 절차를 도와주기로 약속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젠 나에게 그걸 직접 가지고 여행까지 해보라는 것이다. 사진 이송을 위한 중간거점으로 자신의 공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 개성의 외국인 사업자 브래들리가 내 옆에 앉아 있다가, 자세를 살짝 고쳐 앉으면서 나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그에게도 그 제안은 뜻밖이었던 것이다.

놀란 눈으로 미스터 원을 쳐다보던 내 입에서 흥분된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진짜?”

내 말에 사무용 칸막이 뒤에서 북조선 사람들이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다. 외국인이 이런 말을 하면 어딘지 몰라도 흥미롭고 우스운 모양이다.

그는 의자에 기댄 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안 될 거이 뭐 있갔소?”

결국 서울서 평양까지 육로여행을 하지는 않았다. 아쉽지만 그건 절차상 너무나 복잡한 일이어서 추진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백두대간을 담은 70개의 사진이 훨씬 더 중요했다. 내가 아니라 그것들이 우선적으로 평양에 도착해야만 했다!

나는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개성공단을 나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구례의 친구에게 줄 백두산 들쭉술과 맛있지만 독한 금강산 담배를 샀다. 상점 안에는 분홍색 꽃무늬 옷을 예쁘게 차려입은 여점원이 세 명 있었다. 나는 나의 형편없는 한국말로 너무 예쁘다는 둥 농을 걸었다. 그들은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북한 여성들은 까칠해서 농을 걸더라도 일정 선을 넘지 않도록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

나는 그들에게 자랑했다. “지리산, 전라도 살아요.”그들은 뚱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리산 알아요?”내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예.”그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리산 가봤어요?”이어서 내가 이렇게 묻자 그들은 당혹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나는 그들에게 지리산에 가봤냐고 물은 것이 멍청한 짓이었음을 깨달았다. 뭐라고 얼버무리지? “다음에 지리산 사진 봐요.”양손가락을 네모로 모아 사진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다음에 올 때 지리산 사진을 보여주겠다는 뜻으로..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먹었겠지? 나의 한국어 대화는 항상 몸짓 연기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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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조선뉴질랜드친선협회의 황승철 동무를 생각했다. 이 전시회가 정말로 열리게 하기 위해서 그는 이제 북측에서 연줄을 대야 하고, 나는 남측의 통일부에다 연줄을 대야 한다.

물론, 남북 간의 대화에는 믿고 기댈 만한 게 아무 것도 없다. 정치 군사적인 몇 가지 ‘불씨들’ 중의 어느 하나에라도 불이 붙었다 하면 이 계획은 언제라도 수포로 돌아가버릴 수 있다. 나의 뇌리에는 이런 현실에 대한 인식이 늘 경계를 서 있었다. 그건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았다.

4월 27일에 나는 홍용표 장관님께 나의 사진이 군사분계선을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서신을 보냈었다. 몇 달이 지나서 그의 참모가 전화로 응답을 해왔다. 우리는 아이디어가 좀더 구체화될 때까지 면담은 뒤로 미뤄왔다. 그런데 오늘(6월 29일)이 드디어 그 면담을 하는 날인 것이다. 사무실로 걸어가는 내 수중에는 북측의 초청장과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의 허가서가 들려 있었고, 운송과정에 도움을 주겠다는 개성공단 사업자의 약속이 있었다. 이제는 통일부가 나와 함께 게임을 할지 말지를 정해야 할 차례다. 그들이 과연 게임에 응해줄까?

나는 한국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의 시나리오를 그들에게 설명했다. 즉, 할머니가 버스 터미널에 가서 기사에게 손주에게 보낼 음식 박스를 맡기면 손주는 저쪽에서 그것을 찾아간다. 내가 하려는 것도 이와 똑같이 단순한 일이라고. 나는 그것을 ‘남북 택배’서비스라고 불렀다. 그들(통일부)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고, 일을 성사시켜보기로 합의했다!

그들은 내가 다음 미디어를 통해서 많은 독자들의 호응과 후원을 얻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여론의 힘이 통일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건 멋진 일이었다. 하지만 통일부는 나에게, 최소한 사진이 평양에 도착할 때까지는 다음 미디어의 후원자들에게 그 어떤 확언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그게 무슨 뜻인지를 생각해봤다. 그들은 내가 우려하는 것과 똑같은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두 권력 사이에 존재하면서 작용하는, 모든 소통을 무너뜨리고 모든 작전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불씨’말이다. 나는 그게 좋겠다고 동의했다.

 8월 1일에 액자에 넣은 70개의 사진이 도착했다. 모두 포장되어 있었다. 나는 그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 잘 됐으리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 70장의 사진이 광복 7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개성을 거쳐서 평양으로 보내질 물건이라는 사실을 인쇄업자와 액자상에게 단단히 각인시켜두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물건이니까 잘 해주셔야 돼요!”

 8월 4일. ‘불씨’! 군사분계선에 불이 붙었다! 지뢰가 터진 것이다. 두 명의 병사가 다리를 잃었다. 남측은 비난하고 북측은 부인한다. 병사들이 불쌍하다. “빌어먹을 냉전. 빌어먹을 휴전선.”욕이 나온다.

하지만 이틀 후, 나는 마치 촌사람처럼 금강산 담배를 입가에 문 채 아이폰에서 흘러나오는 김추자의 노래를 들으며 봉고 트럭을 몰고 구례읍을 출발해서 고속도로를 달려 혼돈의 도시 서울로 들어가고 있었다. 짐칸에는 70개의 액자에 든 사진과 이젤이 실려 있다. 다음날이면 그것은 다른 트럭으로 옮겨져서 개성공단으로 실려 가고, 나도 차를 몰고 뒤 따라 갈 것이다. 개성에 도착했을 때는 사진이 이미 북한사람들에게로 넘겨져서 적십자사 트럭에 실려 평양으로 안전하게 가고 있었다. ‘북남’택배 서비스가 벌써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나오는 길에 개성공단 편의점에 들러서 여점원들에게 다시 서툰 농을 던진다. 그들도 날 기억하고 있고, 이번 작전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좋은 소식은 한반도를 재빠르게도 오르내린다. 나는 약속했던 대로 그들에게 내 책속의 지리산 사진을 보여준다. 그들도 좋아한다. 나는 책을 거기다 두고 가고 싶지만 그러지 않는다. 그것은 ‘남조선’ 말로 쓰인 남조선의 출판물이다. 한반도에서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슬픈 일이다!

밤늦게서야 고속도로를 벗어나 구례의 시골 마을로 차를 몰아 들어온다. 하늘은 깜깜하고도 평화롭다. 나는 창유리를 내려 밤공기 속에 스며 있는 사악한 비료 냄새를 한껏 들이켜 느껴본다. 향기롭다! 트럭을 세우고 내린다. 금강산 담배에 불을 붙이고 지리산의 별을 쳐다보면서 개구리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한국 여름의 소리다. 서울에서는 이런 것을 경험하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와서 좋다.

8월 10일. ‘불씨’: 남한이 군사분계선에서 대북선전용 확성기를 다시 틀었다! 북한이 K-POP 리듬에 고문당하고 있다. 나는 손담비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이건……

 이틀 후, 나는 인천 공항 출국심사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심사관이 내 여권을 넘기다가 무수히 찍힌 큼지막한 북한 비자 도장을 보고 멈춘다. 그는 내 신분증을 보고 내가 전남 구례군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참을성을 잃고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 그가 내 이름을 읽으면서 말한다. “로저 쉐퍼드씨, 구례에서 왔습니까?”

“네, 왜요?”퉁명스럽게 대꾸한다. (당국과는 오래 실랑이하고 싶지 않다.)

“다음 미디어 뉴스 펀딩의 백두대간 이야기에 나오는 그 로저 쉐퍼드씹니까?”

“저를 아세요?”금방 기분이 바뀐다.

“예. 지금 북한으로 가시는 건가요?”그가 묻는다.

“예, 평양에서 백두대간 사진전 열러 갑니다.”

“잘 되시길 빌게요. 저도 인터넷에서 계속 봤어요.”그가 여권에 도장을 찍으면서 미소 지으며 말한다.

심사대를 떠나 누구의 영역도 아닌 면세구역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내가 이젠 남한 사람들의 전적인 호응을 얻고 있음을 실감한다. 다음 역은 평양이다.

평양에서 새로운 공항

Roger Shepherd©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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